가을기 Workspace

레드필, 페미니즘이 주는 특별함과 달콤한 유혹. 본문

생각정리/유튜브

레드필, 페미니즘이 주는 특별함과 달콤한 유혹.

가을기_ 2024. 8. 31. 18:20

~~를 해야한다라는 당위를 만들고 자아의탁를 해버리는 행위는 불안때문일까? 개인적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는. 그러다보면 이데올로기와 이념이 탄생한다. 대표적인 것이 페미니즘, 레드필. 혐오의 훌륭한 수단이 된다.
레드필은 알게된 사람으로 하여금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알파메일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쾌락에 돈을 쓴다. "자아 의탁적 쾌락"이 필요한 연약한 친구들이 성공학, 레드필 등의 지식에 많이 소비를 할 수 밖에 없다.

페미니즘이 발전된 이유를 살펴보자. 정작 차별받은 세대는 가만히 있는데, 정작 젊은 세대에서 많이 퍼졌다. 어떤 '여자', 삶이 결핍 투성이고 인생 자체가 불안한 사람이 취업도 안되어 불만이 많고 신경증적인 증상이 많은 상태. (근데 사실 인생이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불안하고 불확실한 것이 삶이다. 누구나 결핍있고 누구나 힘들다.) 이렇게 내 삶이 마음대로 안되고 미디어에서 찾은 메세지, "네가 못나서가 아니고 이 사회구조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이것만 해결되면 모든게 해결될거야"라는 말은 너무나 유혹적이다. '아, 내가 못난게 아니라 이 사회 기득권, 남성들에게 문제가 있구나' 원인을 이렇게 단순화하면 납득도 쉽고 명쾌하다.

그런데 사실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여성차별'만을 극단적으로 주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될텐데. 정작 나라에서 2년동안 나라지키며 온갖 사고를 경험하고 또 사회인프라를 몸 갈아 넣어가며 건설 재건하는 것은 남성들이다. 지금껏 우리가 편하게 누려온 지하철, 건물, 집, 이 인프라를 구축한 것들은 작업복을 입고 땀흘리며 일해온 블루칼라들이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이 사회를 유익하게 이끄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렇게 본다면 차별당하지 않은 세대와 성이 있을까?

관점을 이번엔 남성으로 가져와보자. 어떤 '남성', 그런데 연애도 잘 안되고 여자들이 맨날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다. 이런 부정적인 결과물들의 원인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외모, 돈, 지위, 여성들의 본능, 이정도로 퉁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 생겨봐야 연애 못하는 이들도 있고, 사겨봐야 얼마 못가는 이들도 있다. 극단적으론 무시당한적 없는데 심리적인 원인으로 그렇게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 눈에 갑자기 들어온 '레드필' 컨텐츠. 너무나도 명쾌하고 단순하다. 당연하다, '여자들은 원체 계산적이고 기회주의적이니까'. 종국에는 이렇게 결론짓게 된다. "여자란 원래 이런 존재니까 내 사회적 경제적 지위 높이고 내 외모도 가꾸고 해서 찍어 눌러야 하는구나." 이런 결론으로 흑화를 해버리게 되는 것.

이러한 결론에 이를 수는 있다. 다만 경계해야할 것은 습득하자마자 "알파메일이 된것만 같은 착각". 명명의 효과는 특별함이라는 착각.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개념이 특별해진다. "레드필", 얼마나 멋있는가. 페미니즘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명명함으로써 볼품없었던 사람도 굉장히 깨어있는 능력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이념은 굉장히 중독적이다. "레드필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 그것만으로도 스스로가 깨어있는 Hot guy가 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하는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어봤다면 이해할 것이다. 자본주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무언가를 거래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해버린 나머지 사랑마저도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어버렸다. 내 가치가 너보다 높으니 내가 갑질해도 되네, 가치가 낮으니 내 가치를 어떻게든 높여 주도권을 되찾아 오겠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있기 전부터 번식과 사랑은 존재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품었던, 상대와 나의 결핍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낭만을 되찾아오는 것, 그리고 이를 행하는 것이다.

https://youtu.be/2aNDpojTmHw?si=IMd8ChCKJ22AxYW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