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고립형 외톨이 외로워하는 이들이 많다. 21세기는 외로움의 시대라고들 하니까.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이는 혼자라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는 와중에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아무도 나를 신경써주지 않는 것 같을때 생기는 것이 외로움. 스스로 고독과 은둔을 택하는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쟈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할때 고독과 은둔을 택한다.
다만 외로움이 극한에 달하면 분노로 바뀐다. 모두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적 슬픔"에 빠진다. 슬픔은 외로움과 합쳐져 분노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수치심을 보호하는 방어기제라고 생각한다만.)
이러한 분노 어린 슬픔(우울)은 타인에 대한 공감을 떨어트리고 사회의 이득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진다. 타자와의 신뢰관계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공동체 감각이 부재하다는 것. 이는 혐오로 이어진다. 내 자신에 대한 혐오에서 시작한다. 외로움이 "어떤 사람도 나를 챙겨주지 않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지는 존재"라는 감정이니, 스스로가 싫어지게 된다. - 내가 잘생겼더라면, 예뻤더라면, 몸이 좋았다면, 매력이 있었으면, 성격이 좋았다면 나를 챙겨줬을 텐데. 이걸 안에만 담아둘 수 없다. 억눌린 부정적 감정들은 언젠가 터져나오거나 배설된다. 결국 투사가 나온다. 집단갈등이 많아졌다는 건, 스스로를 혐오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기혐오에서 이유를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타인에 대한 혐오의 이유를 찾는 것은 쉽다. (저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해서, 저런 행동을 해서.) 나를 미워할땐 이게 왜 미운지 정의하기 어렵다. 이유를 찾아 헤맨 끝에 도달하는 결론은 "공통의 적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남녀갈등. 외로운 사람들이 스스로를 너무 혐오하다가, 결국에는 그게 너무 지쳐가지고 공통의 적을 규정하며 소속감을 느끼고, 혐오에 중독되어 간다.
풀 곳이 없는 외로움은 디지털 세상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이러한 커뮤니티들을 많은 사람들이 악이라 생각하고 접근조차 하지 않기를 권한다. 이는 한번 발을 담그면 마찬가지로 악에 물들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러한 곳들도 사람들이 모여 살고있는 곳이고, 경험해보지 않고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아쉬운 행동이다. 너무나 개방적인 접근성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기에 평균적인 질을 떨어트릴 수 있으나, 이 시대의 청년들에겐 되려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을 관찰해보면 분노가 차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본연적인 외로움이 느껴진다. 그 분노의 이유는 모두 외로움인 것이다. 되려 그런 커뮤니티가 있어서 이 사회가 문제없이 굴러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인터넷이니 그렇게 하는 것이지, 극단적인 1%가 지나친 성향을 보이는 것이지 대다수는 그냥 눈팅하고 건실하게 사는, 공격성이 없는 사람들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내가 능력이 없고 잘난 점이 없으면 존중받기가 어렵다. 능력없고 못나면 혼자가 되고 힘들어진다. 이때 좋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혼자서 스스로 일어선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자아도취라 봐도 좋다. 스스로 일어서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좋은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면, 어디서 그 감정표현을 하고 외로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결국 그런 자리를 못찾은 사람들이 고립되고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건데, 그러니 커뮤니티는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커뮤니티는 위험하고 패배자들이 밀집되어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고삐를 내려놓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며 심리적 부담을 내려놓는 곳이다.
다만 vpn을 켜서까지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면,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임을 인지하면서도 게시글을 올린다던지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것이라면 이는 자기자신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고 스스로에게 굉장히 유해한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걸리지만 않았지 이미 범법자다. 언젠가는 후회할 행위이고, 마약 도박처럼 스스로를 망가트리게 될 것이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회피하려고 하는 행동은 심리적으로 스스로에게 안좋다는 것.
커뮤니티는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 그저 사회를 이루는 구성 요소중의 하나다.
다만 도취되는 것은 경계하는 것이 좋다. 내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발전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나한테 발전을 주는 사람들은 내가 뭔가 나쁜 행위나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저질렀을때 그대로 지적하고 스며들기 어렵게 하도록 만든다. 반면 커뮤니티 활동은 지적이 없고, 올바르지 않은 행동에 도취되는 것이 쉽다. (책임질 필요가 없으니 일어나는 아무말 대잔치가 된다는 것.) 그래서 나를 검열해야하는 격식있는 커뮤니티도 겸하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이 사회의 탓인가. 이를 좌파의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보수진영이다. 그러나 우파라고 프로파간다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개인은 강해져야한다."와 같은 발언이 대표적. 모든 것이 사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만, 개인의 탓이라고도 할 수 없다. 지금의 세태는 한국을 포함해 많은 국가들(미국의 트럼프, 그외 수많은 트럼프주의를 표방하는 리더들)의 젊은이들이 보수를 지지하고 있다. 개인의 패배감이 팽배해질때 국가를 성장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독재적인 리더십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독일의 나치즘이 대표적.
많은 청년 남성들이 특히나 외로운 것 같다. 물론 청년 여성들도 많이 외롭겠지만, 보수적인 메세지에 더 귀를 기울이고, 극단적 선택의 통계도 시도는 비슷하나 진짜 죽는 사람은 남성이 훨씬 많다.
결핍과 외로움, 이를 극복한 사람들은 모두 알게모르게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 (필자 또한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죽고싶었을때, 주변인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환경이 조성이 안되어있는 친구들이 훨씬 많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안 좋은 상황에 처한 이들이 있고 그런 용기도 못내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스스로의 성장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걸 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린다면, 국가와 사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모든 실패나 패배감들이 다 개인이 약해서, 의지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패배하다보면 모든 용기와 희망을 잃어버릴 수 있다. 기회도 평등하지 않다.